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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엽기적인 성(性)문화 '요바이(よばい)' 본문

기묘한 스토리

일본의 엽기적인 성(性)문화 '요바이(よばい)'

세-모-이 2021. 2. 4. 07:00

 

이번 시간에는 일본의 특이한 성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얼핏 들으면 조선시대의

보쌈과 매우 흡사하지만

더 충격적인 이야기일 듯 한데요.

 

그것은 바로 1200년 일본

왕조시대부터 시작된

'요바이(よばい)'라는

 

 

일본의 옛 풍습으로

밤중에 성교 또는 구혼을

목적으로 모르는 람의

실에 침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좀 충격적인 것은

이 풍습이 사라진게 불과

100년도 안됐다는 사실인데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200년 왕조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행해졌으니,

실제 사라진지는 

채 60년도 안된겁니다.

 

 

주로 서일본에서 보이던

풍습으로 간토 이북 지방에서는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요바후, 요바히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유독 

서일본 지역에서 이 풍습을

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래 유지된 전쟁으로 인해

남성의 수가 줄고

과부의 수가 늘어나면서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중 하나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성풍속을 통해

인구 증가, 근친상간 방지,

미망인에 대한 구제 등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풍습은

옛 일본의 공동체 사회 유지를

위한 문화였다는 것이죠.

 

'요바이(よばい)'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 여성, 과부,

하녀, 유모에게만 해당하는

풍습이었습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그래도 매우

제계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기가 찬 여성은 지역 유지인

촌장의 공인 아래

'요바이(よばい)'

성립되었는데, 여성이

반대하지 않거나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제지하지 않으

'요바이(よばい)'가 성립하게 됩니다.

 

 

3~4일 정도 '요바이(よばい)'

이뤄지고 남성과 여성이 둘다

마음에 들면 그 이후에

결혼이 이뤄지게 됩니다.

 

 

한 명의 여성에게 여러 명의 남성이

구혼할 경우 촌장의 주관 아래

밤에 숨어들 사람들의 순서가 정해지고,

특정 남성이 '요바이(よばい)'를 하는 날

주변에 보초를 세워 그 남성이

숨어드는 것을 적발해내면

그 남성은 물러나야했습니다.

 

그러나 그 보초병을 뚫고 들어오면

그 남성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웃픈 사실이 있는데요,

체계적으로 '요바이(よばい)'가 

이뤄지고 있는 마을에서는

여자가 못생겼을 경우

회의를 통해 상대를

바꿔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의 남자가

이웃 마을 여자를 범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었는데, 혹여나

'요바이(よばい)'하는 것을

걸리기라도 하면 거의

반죽음이 될 정도로 때렸고,

체계가 잘 잡힌 마을의 경우에는

침입자가 맞아 죽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이 풍습은 더 나아가 축제로

발전했는데요. 에도 중기에는

전국 축제로 발전되었는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비난 받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높은 신분의

남성과 사귀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때, 축제를 빌미로 야외에서

많은 남녀들이 관계를 가졌는데

이를 잘 노려 공적 신분이 높은

사람과 관계를 가진 후 임신에

성공할 경우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요바이(よばい)'

인생 로또 복권 같은 셈이었죠.

그러나 축제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못생긴 여성은 인기가 없어

오히려 남자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고하는 슬픈~

 

하지만 옛 일본의 성풍속이

단순히 문란하다고 판단하면

잘못된 것일겁니다.

 

이 풍습은 전쟁으로 인해

 

 

남자수가 줄고 과부가 증가하는

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일본은 실제로 오랫동안

전쟁으로 인해 남성의 상당 수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과 결혼했던 여성은

과부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일본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바이(よばい)' 풍습을

고안해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성풍속을 통해 인구 증가,

근친상간 방지. 미망인에 대한

구제 효과를 볼 수 있었던거죠.

 

즉. '요바이(よばい)'

문란한 성풍속이 아닌

공동체 사회를 위한 문화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여성에게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노동력 확보와 부양가족의 재구성,

병사 동원 등을 위해 권장된

풍습인 만큼 여성 쪽이 중심되는

거부권이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의 선택권이

강화되었으며 아이가 생기면

여성에게 아버지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졌습니다.

 

육아문제등에 대한 부담을

남성 쪽에 넘기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존재한 셈이죠. 

 

 

밤일을 다니는 유녀(일본 기생)들도

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규칙은 엄격하게 적용되었는데요.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바이(よばい)'를 주도하는 촌장이나

지역유지에 의해 부분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풍습은 시대적, 지리적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다양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낯선 손님이

마을에 찾아오면 그 손님에게

자신의 아내를 내어주기도 했는데,

 

 

혹시라도 손님이 아내를 거부하면

수치심을 느껴 그 아내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외에도 여자가 남자의 처소를

드나드는 풍습도 있었고 결혼 후에도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질 수 있어서

일본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큰 부담이 없었고, 아이를

공동재산으로 여겼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이 지목하는 사람이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바이(よばい)' 풍습이 사라진 것은

불과 50~60여년이 채 안 됐는데요.

 

100년전 부터 일본 정부가 없애려고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없어졌다고 합니다.

 

 

없어진 이유도 일본 특유의 다른

성문화가 출범한 시기와 비슷해

'요바이(よばい)' 풍습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성문화가

발전한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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